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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세계일주/2016-2017 유럽

자전거 세계여행 ~2468일차 : 모스타르 (Mostar) , 살아남은 자의 슬픔

by 아스팔트고구마 2018. 2. 28.

자전거 세계여행 ~2468일차 : 모스타르 (Mostar) , 살아남은 자의 슬픔


2016년 12월 19일


숙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쇼핑몰에 환전하러 왔다.

전날 왔었는데 여권을 안 가져와서 환전을 못했다.

에효. -_-;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자국 화폐인 마르크를 쓴다.

환율도 1:2가 아닌 1유로당 1.95를 줌. 

아놔 야박하게.ㅋㅋㅋ

근데 재미있는건 살때 팔때 가격이 같다는 거.




몬테네그로는 자국 화폐 대신 유로화를 썼다.

자국통화를 유로화에 페그 시켜놓다니. 

나라도 작고 경제 규모도 작아서 그런거라 생각하겠음.



돈을 바꿨으니 먹을거리 사러 지하 수퍼마켓으로 가야지.

파스타 종류 많네. 그려.

먹을거리 이것저것 주워담는다.




맥주로 유명한 체코나 독일 등지의 수입맥주가 이곳에서 가격이 1유로정도밖에 하지 않음.

저렴하다.




돌아가는 길 주변모습.

가장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이미지를 잘 떠올리게 하는 것들, 

적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는 첫인상의 느낌은 바로 이런 건물들이 아닐까?

보스니아 내전 특히나 보스니아 학살의 느낌이 진득하게 있는 곳...




모스타르 시 자체가 별로 큰 도시도 아니고 높은 건물도 시내 중심가의 쇼핑몰 말고는 별로 없다.

더욱이 여행자들이 머무는 모스타르 브릿지 근처의 숙소들도 몇층 되지 않는 건물들이다.

여행에 대한 부분중 지금 이 순간은 외부로 많이 눈이 가고 죽음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단순히 죽음이라기 보단 인간의 욕망, 탐욕, 정치성이 그 주요 키워드가 되겠지.




다음날 온 곳은 자전거 점빵~ㅋ

드레일러가 많이 낡았다. 

주인 아저씨가 보더니 체인도 참 오래 됐다며 넌지시 교체를 해보겠냐고 물어본다

사실 바꾸려던 곳은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였었다.

가격이 뭔가 애매하다 싶어 그곳에서 수리안하고 왔는데  거기보다 10유로 이상 더 싼 편이라 주저없이 드레일러 교환을 선택했다.


아저씨가 뭔가 주저하듯 말씀하셔서 왠지 믿고 싶었음.

사실 자전거가 안 좋긴 했다.

마케도니아에서 스프라켓 교체 할때 그때 같이 바꾸려다 말았었던거였기 때문에...




참 오래도 썼지.

어디서 교환이 마지막이었더라? 

베네수엘라였나? 우크라이나였나?

당시 바꿀땐 기억을 했는데 ㅋㅋㅋ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이거.




자, 새로 장착.




변속 케이블도 많이 낡아서 아저씨가 보더니 한숨 크게 쉼. ㅋㅋㅋㅋㅋ

얘가 좀 고생을 많이 했죠. ^^ 




전문가의 따뜻한 손길로 터치중. 

음마야~ 




완전 부드러워 져뿌떼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잘가라, 녀석아.

무생물에 뭔 감정을 담겠냐만 오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렇게 된다. 

무엇보다 내 땀과 에너지와 고생을 함께 한 녀석이라 더더욱 그러하다.




기름끼때 잔뜩 낀 허브 내부 청소, 그리고 그리스도 새로 발라줌.




러시아 말로 이반이라고 하고 보스니아 어로 이보라고 자기 이름을 설명하던 아저씨.




많이 신경써줘서 고맙습니다.


아, 자전거 상태 진짜 좋아졌다! 

역시 장거리 여행에서 주기적인 손봄은 정말 중요한게 맞음!




사진찍는 나 보고 지나던 찰나 포즈취해주던 현지인.ㅋ


자전거.... 

큰 문제거리를 하나 덜었다.



자전거를 고쳤으니 페달질 테스트 겸 모스타르 동네 한바퀴 돌아봐야지.




그래봤자 모스타르 브릿지 주변은 끌어서 가야한다. ㅋㅋㅋ

다리 주변은 분위기 좋게 천천히 걸어서 다니는걸로.




춥다.


발칸반도로 들어온 후 자주 드는 생각이 하나 더 있다.

봄, 가을엔 어떨까 하고.

그땐 더 좋을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를 전국 방방 곳곳을 모든 시기에 죽기전에 다 돌아볼수나 있을까?

당연히 못 그러하니까 우리사는 지구를 조금이라도 대충 보는게 낫진 않을까.

음, 난 후자라서.




다리주변 




걸어서 가볼 곳이 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천수를 못 누리고 눈을 감아 이곳에 있다.

위에서 언급하다 말았지만 정치와 권력과 욕망에 대한 것들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결과 좋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다.




무덤들을 보면 이곳에 묻힌 사람들의 나이대는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묘비에 죽은 날짜를 보면 같은 날, 혹은 하루 이틀 차이의 날짜로 표시된게 많다. 

특히 당시 8000명 이상이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란 이름아래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다.

바로 그 '보스니아 학살 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당시 전체인구 약 380-390만명.

지도상 녹색 계열 - 보스니아 계(48%) , 붉은색 계열 - 세르비아 계 (37%) , 푸른색계열 - 크로아티아 계 (14%)

소수민족으로 유대인과 루마니아계가 0.6% 

인구에 비해 세르비아계 지역이 훨씬 넓다.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서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1. 구 유고 연방시절 그 연방에서 각 나라들이 독립을 하려했고 보스니아 또한 마찬가지였음.

2. 보스니아계가 크로아티아계와 함께 연립정부로 독립을 하려할때 유고 연방의 주축인 세르비아 계가 반대를 했는데 보스니아는 감행

3. EU 의 보스니아 국가 인정 이후 보스니아 지역에 있던 세르비아계 사람들과 대립 시작, 신유고연방(주축은 세르비아)에서는 그들을 뒤에서 지원함.

4. 무력충돌로 커지다가 결국 내전으로 확대, 휴전도 거부하고 세르비아계의 보스니아계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시작, 

이때 분쟁으로 엄청난 사상자 발생


으로 요약이 되겠다.



남겨진 사람의 슬픔 혹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해야할까???

유럽의 화약고 / 발칸반도의 화약고 / 동유럽의 화약고 등으로 불렸던 곳.






여행자로 와서 이들을 바라볼때 내가 느끼는 갈등 같은것은 없다.

그냥 섞여서 한 여행자로 있다가 갈뿐. 

어릴땐 안 그랬던것 같은데 나이가 드니까 감정 이입이 어떨땐 너무 잘된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그런 부분들은 잘 분리해서 반응할줄 알았는데.

역시나 나도 사람. ㅋㅋㅋ

이 글을 보고 뭔가 불편한 느낌이 있다면 그 사람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겠지.




건물이 독특해서




보스니아 차 번호판




오늘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간다.




숙소 앞 땔감.

옆집에서 쓰는 듯.




내가 맥주 마셔보고 아니 이런 맛이? 하고 느꼈던 그 맥주! 

체코에서 마셨던 필스너 우르켈 그맛은 절대 아니었다.

와인이나 맥주나 물건너 오면 안 되는건가. ㅋ




숙소에 있는 동안 숙소 주인 스테판이 몇가지 부탁을 했다.

호스텔을 꾸미는데 필요한 손님들의 흔적을 각 나라말로 적어달라는 것.

또한 자기 호스텔 광고하는데 쓸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했다.




큰 문제 아니라 찍기도 하고 사진 편집과 광고 문구도 다 해서 부킹닷컴에 올렸다.

(지금도 부킹닷컴에 보면 우리들 사진 1-2장의 사진이 남아있다. ^^ 한 몇달동안 잘 쓰더라.ㅋㅋㅋㅋ)




적당히 먹을 곳 좀 추천해달래서 숙소 근처에서 음식 사먹은거. 

저렴하고 맛났음.




맑은 날의 모스타르, 그리고 뒷산.

저기 한번 올라갈까 싶은데 귀찮아서 가기가 싫다.ㅋㅋㅋㅋㅋㅋㅋㅋ




뭐였드라?




맑은 하늘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




오늘도 동네 산책




자뭇 생각이 드는건..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 잘 모른다는 거.

특히 현대사.




나 나름 국사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모르는건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희생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진짜 내가 이걸 학교에서 배웠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는 몰랐는데 사람들은 이걸 언제 배웠대?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지금에서야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고 어떤 기념일마다 뉴스에서 설명도 해주니까 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할 것들이 많아져서 다행이지만.




내전 당시를 잊으면 안되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있을리가...




우리나라에 미국 총기협회처럼 말도 안되는 논리로 총을 무장 시킨다면...

우리나라는 아마 아나키스트들이나 최고급(?) 테러리스트들의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라 생각한다.

마음에 그렇게 '홧병'이 많은 '한'많은 민족이 식칼 싸움, 야구 방망이 싸움으로 그치는게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를 노릇이지.

사람에 대한 묻지마 스나이핑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크리스마스 이브다.

사실 동네 한바퀴 돌아다니면서 뭐할까 생각을 좀 했었는데 




딱히 뭐 할 건 없음. 

숙소에 머물던 손님들이 전부 밖으로 나왔다.

그래봤자 매니저인 스테판을 제외하곤 5명. ㅋㅋㅋ



비수기라 확실히 손님이 적다.

요금도 당시에 무려 '3유로' 밖에 안 했다!! 

부킹닷컴에 올릴 사진 찍는다고 이런저런 이야기 했는데 손님 더 땡긴다고 요금 더 내릴꺼라는 말도 했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고 살겠냐. -_-; 오히려 내가 더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터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현지인, 인도 , 영국 , 미국 , 그리고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

국적 따위야 뭐. 




이 시간에 특별히 문 연 곳이 없었다.

이슬람 사원도 여기저기 있던곳인데 크리스마스라고 무슨..-_-; 

그나마 문 연곳을 찾아 와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공연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ㅋㅋㅋ




근데 펍에 왠 우리나라 녹슨 철조망 조각이 있지? 

묘한 느낌이다. 




ㅋㅋㅋ 밖에서 미친척 사진을 좀 찍었는데 그나마 정상적인거 ㅎㅎㅎ 




그래,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심심할뻔 했다. 

사실 별 의미없이 그냥 조용히 보내려고 했었다. 

숙소 매니저인 스테판이 손님들 심심할까봐 밖으로 끌고 나온거.ㅋㅋㅋㅋㅋ




덴마크에서 일하는 인도 여행자 위놋 과도 며칠 지내다보니 친해졌다.

나 착하지?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ㅋㅋㅋ 

슬슬 떠날 준비를 할 시간이 다가온다. 


2016년 12월 25일까지의 새벽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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