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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세계일주/2018 유럽&북아프리카

자전거 세계여행 ~3102일차 : C.S.Lewis 그의 무덤 앞에서 울다

by 아스팔트고구마 2020. 3. 12.

자전거 세계여행 ~3102일차 : C.S.Lewis 그의 무덤 앞에서 울다 


2018년 8월 26일


새벽엔 거센 바람이 불었다.

축축한 바람과 그 바람으로 인해 흩날리던 낙엽이 텐트를 때리는 소리에 잠을 몇번 깼다.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은 예감의 아침이었다.






마로(Marlow). 




그러려니 하고 싶은데 여름 날씨가 이런건 굉장한 아쉬움이다.

맑고 엄청나게 더웠던 불과 1-2주 전의 벨기에 네덜란드와 영국 날씨가 이렇게나 다른가.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더 달리지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해서.




배가 고파 옆에 보이던 수퍼마켓 세인스베리에 들어갔다. 1파운드짜리 딸기 한통 구입.

비 멈추기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딸기가 내 입으로 사라지는 시간이 더 빨리 간다. 


1시간여를 기다렸다.

말이 1시간이지 그냥 기다리기가 어디 쉽나...

비가 완전히 멈추길 기대하는 것은 안될것 같고, 오늘 목적지가 그리 멀진 않은데 비로 인해 꽤 늦을것 같다.

어쨌거나 출발! 




얼마 안가 다시 섰다.

빗줄기가 너무 아프구만. 




옷이 젖어오는 속도를 감당하기 힘들다. 

잠시 멈춰서 우비 좀 꺼내서 멈춰섰다.


중간에 한번 내릴땐 와... 물폭탄 쏟아지는 줄 알았음. ㅋㅋㅋ 

오르막에 이러면, 너무 힘들다. ㅋㅋㅋㅋㅋㅋㅋ

속옷까지 싸악~~ 젖어줍니다. ㅎㅎㅎ




젖은 속옷 어떻게 할꺼임?ㅋ

절은 땀+빗물 = 쩐내!  참 거지같은 조합. ㅋㅋㅋ


비 피할 지붕이나 건물같은 곳을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건지.

한숨만 나온다. 여기보단 좀 더 가면 동네에 어딘가 비피할 곳이라도 있겠지 싶어 다시 달렸다.


그러나... 비는 더 거세졌다. 

신발은 다 젖었고 기존에 젖은 옷은 또 땀과 함께 뒤섞이기 시작. 

아, 진짜 빡세다. ㅋㅋㅋㅋㅋ





미리 판초우의를 입었어야 했는데, 옷이 거의 젖었고... 거센 폭우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우짜겠노, 빨리 갈아입어야지. 

작은 동네에 왔는데, 겨우 지붕있는 곳을 찾았다.


마주보는 일반 가정집 건물을 지나는 지붕 발견.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거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옷을 부리나케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젖은 머리카락을 털고 있는데, 갑자기 승합차 한대가 오더니 할머니 한분이 내린다. 

눈인사. 그리고 짧은 대화. 

옷 젖은거 말리는거 보더니 집안으로 들어오라며 차를 내 준다. (내가 불쌍해 보였나.ㅋㅋㅋ)




성함이 베티 할머니라는 이분은 오늘 친구들 모임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이란다. 

어디로 가냐는 말에 오늘 옥스퍼드까지 간다니 비가 오는데 갈 수 있겠냐며 물으신다.

숙소를 예약해놨던지라 오늘 꼭 가야한다고 했다. 


차 한잔, 커피 한잔을 만들어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더 있다 가라는 말을 하셨지만 너무 늦을 것 같아 안되겠다. 


가는길에 간식으로 쿠키와 바나나를 주신다. 

감사합니다! 




해 없는 풍경. 영국 날씨가 이러하오외다. 

비가 살짝 멈췄다 중간에 한번 빡세게 내리고... 


이사진을 찍는 지금엔 잠시 소강상태.  




살려줍쇼. 한푼 줍쇼. 




배고파서 또 입 안에 마구잡이로 집어넣고... 

연료 채웠으니




오늘 목적지, 옥스퍼드까지 15km 남았다. 




중간에 서기를 반복하며 2시간여를 지나 도착한 곳.




옥스퍼드 시내로 들어가기전 들를 곳이 있다.

벌써 가슴이... 두근 두근 거리네. 




라이더는 내려야지.

도착! 

홀리 트리니티 헤딩턴 교회. Holy Trinity Headington Quarry



https://goo.gl/maps/Z2uRzd9sLA2LDpyB6




무덤이다. 




찾았다. 저기 안내글.  

C.S.Lewis Grave.

내가 영국에 온 단 한가지 이유....




최소 반세기는 지나 보이는 무덤들...

어디일까?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그리고...

찾았다.

무덤 위에 있는 작은 사자 인형을 보고.




여기구나.




'왔네요. 루이스 씨. 안녕.' 잠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의 이름은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약칭 C.S.Lewis 로 알려진 사람.

이곳에는 그와 그의 형, 워렌이 함께 매장되어 있다. 



그에 대한 정보

위키 : https://en.wikipedia.org/wiki/C._S._Lewis

나무위키 : https://namu.wiki/w/C.%20S.%20%EB%A3%A8%EC%9D%B4%EC%8A%A4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로 학자이면서, 평론가 그리고 소설가 등등... 

우리나라 사람에겐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다. 그의 절친이었던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과도 교분이 깊고 그와 내기해서 판타지 소설을 쓴 이야기도 있는데 그들의 작품 세계는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이며 깊다. 


무덤 위에 사자가 있는 것은 그의 작품을 사랑한 누군가가 최근에 올려놓은 듯하다. (다음날 다시 갔는데 없었다.)

직업적인 것으로 그를 다 알수 없고 설명할 순 없지만, 이 무덤은 내가 영국오면 가장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사실 이곳에 있는지 모르고 그의 고향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무덤이 있는지 알고 그곳으로 가려고까지 했었으니까. 여기에 있는걸 알아 고생은 덜었다. 허허허헉ㅋㅋㅋㅋ






20살 대학교때 처음 접한 그의 책을 통해 내겐 사람의 이성과 생각의 수준이 어떤 것인가를 아주 조금 알게 됐다. 

당시 그 깊이를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사유와 논증이 내겐 굉장한 자극과 충격이었다.


나이가 들고 돈도 벌고 국방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면 하리라 마음을 먹은 세계일주.

세계일주를 하면 그리고 영국에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 그의 무덤을 한번 와 보는거였다.

그렇다. 영국에 온 이유는 딱 한 가지 이거였다. 




무덤에 와서 뭐가 달라질까? 

막상오고 나니 그동안 한 생각을 뇌까렸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와서 뭘 하겠나.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것을 넘어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한번 해 볼 수 있길 바랬다. 적어도 이곳에 오면 그럴 환경이 된다고 생각했다. 대상이 달라지면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달리 나오는거니까.




깊은 숨을 몇번이나 내쉰다. 

그리고선 무덤을 보면서 몇마디 내 뱉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참 걸렸네요.'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지? 

부모에 대한 사랑같은 일부의 깨달음은 머리에서 아는 것과 가슴까지 전해지는게 평생이 걸린다고 하던데... 


나로선 지구 두바퀴 거리를 굴리고 나서야 그 느낌이 전해진다. 

나는 이런 상황에 직접 맞닥드리고 나서 시원하게 할말이나 질문이 있을줄 알았다. 

계속 그것을 생각하면서 달렸고 마음 한켠에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생각을 해보니 그 동안 지난 시간과 일들 때문에 머리속이 확~지나가면서 갑자기 시커멓게 무언가로 덮혀 지워진 느낌이다.


이런게 아닌데...

10년 넘게 가슴에 간직하고 있던 것을 이룬 나 스스로가 대견하고 가슴은 벅찬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스스로 한심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 한심함과 답답함에 눈물이 난다.

그 눈물에 다시 웃음이 난다........... 




외롭다.


진리를 탐구하며 스스로 찾아간다는 그런 말을 이럴때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오래 걸렸다.

그와는 대화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책을 통해 그의 이야기는 들어볼 수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와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전과 같지 않다.  

내 마음의 저울에 이 공간이 주는 무게감이 더 커졌다.  




잠시 벤치에 앉았다. 


눈을 감고 이 무덤가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여행 시작전 내가 믿는 바, 그야 말로 '나는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질문에 여행을 통해 발견하고 싶었다.

세계관, 물질관, 종교관, 신앙관, 직업관, 국가관 등등... 


갈수록 세상은 복잡화되고 알게 모르게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에 상관없이 그 바탕을 제대로 두고 싶었다.


적어도 이 여행을 통해서 정답이 뭔진 몰라도 그 정답을 찾기 위한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알았을까...? 란 것에 대해 알게 되는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내가 주변인들에게 여행을 권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머리 속이 싱크홀처럼 뚫렸다가 생각의 골재로 순식간에 채워진다.

내 생각은 또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옆 트리니티 교회의 옆 건물로 갔다.


지나던 현지인이 자전거를 보고,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선 건물 내부를 보면 좋겠지만 오늘 예배가 다 끝났다고 한다.

이 교회가 루이스가 생전,  마치 그의 지정석처럼 여겼던 자리가 있던 예배당인가.

아쉽다. 

그런데.... 마음이 가벼워졌다. 

괜찮다.





먼 훗날에 오늘을 돌이켜본다면, 

자식새끼가 '아빠는 젊었을 때 어떤 고민했고 뭐했어?' 라고 물어볼 때

'정말로 삶과 인생을 알고 싶어 집요하게 지구 두 바퀴 정도는 굴렀어.'라고 말할 호들갑떨 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 지난 시간에 c8.... 눈물난다. 

허무하고 웃프다.

하하하하하!!!!!!!!!! 



늦었다.


밤길을 따라, 옥스퍼드 시내까진 트리니티 교회에서 약 5km를 더 가야한다.

몸도 지쳤고, 마음도 완전 방전이 된 것 같다.



2018년 8월 26일까지 이야기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lifewith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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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9개월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중에 있습니다. ^^ 

격려와 응원의 댓글, 완전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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