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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모험/책Books

[책 리뷰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무기력에 빠졌을 때 반드시 이 책을 보자

by 아스팔트고구마 2019. 9. 17.

[책 리뷰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무기력에 빠졌을 때 반드시 이 책을 보자


'반드시'라니... 이런 어그로나 낚시성 제목은 싫지만, 그래도 단순히 좋다기엔 감동도 크고 울림도 커서 이렇게 제목을 적어봤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다. 읽고나서 이 책을 소장하려 샀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감동을 느낀 스테디 셀러다. 무엇보다 내 삶에 이런 감정은 또 올꺼다. 책장에 손만 뻗치면 한번더 펴 볼 수 있으니까.

좋은 책은 다시 읽으면 그 느낌과 감동은 전과는 또 다르다. 


대학교때 이 책을 처음 읽은 기억이 난다. 군대도 가기전이었으니 이미 10년은 훨씬 전의 일이다. 당시 기억하는 바로 '감옥 이야기라니, 나랑 너무 멀다.'라는 생각.






뭣 모르던 시절 대학생이되면 이제 어른이다 하는 생각과 함께 흔히 하는 착각속에 나도 있었다. 

미성년자의 보호막을 벗어나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잘 알고 어른이 된 것과 같은 스스로의 속임에 빠졌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는 사회적 의무를 참 멍청하게도 받아들였었다. 

참 바보 같았었다.


경험이 주는 의미를 군대에서 배웠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여행에서 몸으로 굴러보니 의미있는 단어들이 몇가지 나온다. 아마 수천번은 사색 혹은 묵상했을 단어 중 하나 '삶의 의미'. 


저자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조명하면서 '의미'라는 단어를 끄집어낸다.

독일 나치 수용소에서 그가 겪은 유태인들의 모습은 인간 이하의 삶을 이곳에서는 너무나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설마 이 책과 내 글을 보고 그럼 '나보다 힘든 사람을 보고 위로를 받으라는 말이냐'라고 묻는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시간 절약을 위해 미리 말씀드린다. 얼른 창을 닫으시길 바란다. 문해력이 낮아 어차피 대화나 이해가 안 될 사람들이니...




이 책과 동시에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 터다. input과 output이 동시진행이 되고 있는데 '읽고 쓰는 작업'중에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내가 믿고 싶어하는 것만 찾는 소위 '확증 편향'에 빠진게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책을 통해 그 압박에서 조금은 벗어났다라고 말할 수 있다.

혹여나 이 책이 확증 편향만을 찾아 그 부분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부분이라고 부를게 아니다. 

그건 분명히 우리의 삶에 있는 모습이고 어디에서나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다. 오히려 부분이 아님을 알려주는 논리가 강화되는 사실이가 생각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야기는 지금 사는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시간적으로 크게 멀지 않음에도 전혀 다른 환경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바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다.


난 진화심리학 혹은 정신의학이 얼마나 맞는지 잘 모른다. 다만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기본적인 모습은 변화는 크게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충분히 알수 있다. 

저자의 경험과는 다르게 다양한 문화의 많은 사람들을 겪어보고 내린 결론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이지 '확증편향'이 아니란 것에 나는 엄청난 안도감이 생긴다. 그의 수용소 경험처럼 몸으로 굴러 배운 것이 상대적으로 기억에 크게 남는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 너무 그리고 흔히 듣는 질문, '앞으로 뭐 할껀데?' 관계의 깊이와 거리만큼이나 그 질문은 의미와 관심의 정도를 느낄수 있다. 어쩌면 아무의미 없이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은 로또 1등에 당첨이 된다면 무엇을 하실건가요? 

가장 많이 나오는 답중에 하나, 바로 '세계일주'.

못해봤다면 아마 나도 그랬을것 같다. 


그렇다면 그걸 한 사람에게는? 

그에 해당 되는 사람이 나인데 나는 어떤 대답을 갖고 있나?


여행이 끝이 보여갈수록 그것에 대해 점점더 고민은 깊어졌다. 

답답하던 찰나 현실(돈벌이)이라는 녀석이 찾아오겠고 사회적인 눈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문제는 넘어간다쳐도 큰 문제는 여행후 찾아온 '무기력함' 을 어떻게 다룰것인가가 큰 문제였다.




일상에서 무기력한 채로 있던차 책장엔 책이 꽂혀 있었고 이를 통해 독서가 찾아왔다. 

그것들을 통해서 발견해내는 삶의 '의미'가 생겼다. 그 의미를 통해 찾아내는 내 삶의 이유가 되는 '흥분과 재미'가 지금의 내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다.


삶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과장되고 의미없는 걱정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무기력함, 무력함에 빠지고 그 생각들이 학습되어 다시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어차피 인생 모르는데 니 인생에 그런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아? 특히 좋은거 말고 나쁜거. 

죽음의 수용소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지금 시대는 그렇게 촌스럽게 우리의 삶을 옥죄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이 말하고 싶은 바를 이 '적극적인 의미 탐색'으로 '내면화'가 생기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는 살아진다 라고 정리하고 싶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누군가 삶의 큰 무기력이나 절망으로 잘못된 결심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봤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삶의 무기력에 빠져 있을때 반드시 기억해야할 의미로의 접근법을 독자에게 넌지시 깨닫게 해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간 대화는 피상적이어져가고 직설적이어진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깊이는 굉장히 얕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말이 길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말을 잘 못알아듣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을 길게 하게 된다. 그렇게 꼰대가 된다.

내가 전자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인가? 아니면 후자에게 내가 말을 잘 못하는 것인가?


나만 겪는문제가 아님을 보면 이건 우리의 대화법이나 생각에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주변에 어떤 주제로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적다면 그 땐 책을 들쳐보고,  '인생과 의미'라는 것으로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우리 삶은 소중하고, 스스로 삶을 그냥 마감하기엔 귀한 존재다.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시련의 의미 中

대학생땐 진짜 몰랐다. 이렇게 엄청난 무게감의 책을 이렇게나 담담히 설명하였는지.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통해 어쩌면 그저 그런 경험이 될 수도 있던 조각들이 오늘 한 보배로 꿰어내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너무나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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