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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세계일주/2013-2015 남미

자전거 세계여행 ~1912일차 : 은광도 마르고, 눈물도 말랐다.

by 아스팔트고구마 2015. 10. 7.


자전거 세계여행 ~1912일차 : 은광도 마르고, 눈물도 말랐다.


2015년 6월 17일


아, 춥다. 


전날의 추웠던 저녁을 뒤로 하고 이동을 해야할 시간.




우유니에서 수고한 자전거.


한 95%이상 덜어냈는데도 자전거엔 소금기가 아직도 덕지덕지...


대충한번 더 닦아내고 간단히 기름칠 한번 했다.












날씨는 몹시도 맑다.


바람은 시원하고 햇빛은 또 뜨거운 묘한 이곳.


저렴한 물가 덕분에 정말 마음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볼리비아가 아닌가 싶다.









몹시도 추웠던 우유니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다음 목적지, 포토시(potosi)로 간다.


얼마 남지 않은 비자, 몇군데의 목적지를 지나 방향을 잡아 가려면 시간이 많이 모자르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눈이 이렇게 상쾌할 수 있을까.


또한 거칠고도 황량한 남미의 지형을 확인하며 달리는 길.








황량한 외곽을 지나며 포토시로 들어선다. 









터미널 도착. 


버스에 자전거 싣는 비용은 또 운전수와 협의를 해야했다.

 얼마냐고 물어보면 최대한 많이 받아내려고 하는게 이들의 방법.


티켓 구입전 간단히 몇군데 다니면서 버스회사 티켓 창구 직원에게 비용이 대략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기준점을 잡아 티켓을 구입하는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터미널에 내려서 숙소 찾아가는 길은 아, 정말 넘 힘들다.


이놈의 끌바...ㅋㅋㅋㅋ


빨리 먹을꺼 다 챙겨먹어야지. ㅠㅠ








Hola, Simon! 


시몬 아저씨 자주 본다.ㅋㅋ









도착한 포토시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작은 골목에 차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곳.









중앙 광장. 점점 화려해 지는 조명.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 스페인 사람들에게 제국의 도시로 불렸던 이유는 바로 은(銀-silver)때문이었으니....






도착하자마자 투어를 알아보고 다음날꺼로 신청을 했다.









에이전시에 도착해서 함께 조인한 다른 나라 여행자들과 함께 간다.









저 멀리 보이는 광산으로 들어가기전 우리가 잠시 들를곳이 있으니....











우리가 투어로 가는 곳은 실제 현지인들의 노동 현장이다.


그들이 필요한 다이너마이트, 코카잎, 음료, 담배, 알콜 및 간식거리 등등을 개인이 알아서 사서 선물을 취하는 형식이다.



잉카 문명권 속하는 볼리비아, 특히나 이곳 포토시에서 코카잎을 중시 하는데 

바로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할때 상대적으로 고단함과 배고픔을 잊게 해 주는 용도로 사용을 해 왔기 때문이다.


UN에서 코카인의 원료라고 해서 금지를 했지만 전통적으로 마셔왔던 코카잎을 UN이 뭐라 한다고 해서 하루만에 바꿀수도 없는 노릇. 


무엇보다도 안데스의 잉카인들이 신성시하고 전통적인 부분으로 지금도 내려오고 있는데 코카인 만드는 놈이 나쁜거지. 칼도 쓰면 안되남유? 


UN님, X까~! 








가이드의 간단한 설명을 들었으니 이제 다시 이동. 









사실 정말로 궁금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약 500여년전 쎄로 리꼬(Cerro rico) 광산에서 나온 은이 스페인을 거쳐 다시 영국으로 흘러가 

산업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던 지역. 역사는 그렇게 물리고 물린다.


이곳엔 수많은 성당들과 도박장, 사창가가 있었다고 한다. 골드 러시처럼 실버 러시또한 이곳에 있었던거다.


또한 야마를 통해 쿠스코에서 실어온 코카잎들은 이곳에서 거래가 되었을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읽었던 책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에서 남미의 역사에 대한 부분을 상세하게 다루는데 그곳중에 하나가 바로 이곳 포토시였다. 


스페인 사람들이 '오똑또치'라는 원래의 도시 이름을 잘못 발음해서라는 설도, 

이곳의 원석이 불에 타면서 녹은 소리가 '뽀똑뽀똑'거려서 포토시(potosi-스페인 발음으로 뽀또시)라는 설이 있단다.










삶이란 TV나 다큐, 책이든 예능이든 무엇이든 간에 남이 떠먹여 주는거 말고 지가 직접 해 봐야하는거다.


아무튼.....

한국에서도 광산을 가본적이 없고 무엇보다 14-15세기 최고의 번영을 누려 스페인의 사치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이곳 포토시의 은광. 

진짜 눈으로 보고 싶었다.











은광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간다. 









보러 간다.


실제 모습이 어떤지.















좁은 갱도 안. 


수세기전 잉카인들이 일하던 이곳은 여전히 아직도 후손들의 일하는 현장이다.


수세기전 이곳 포토시에서 스페인으로 보내진 은의 양만해도 무려 10만톤이 넘었다고 한다.
















사람 한명이 지하로 지하로 들어가서 파고 파고 또 파고...


정말 개미집이 따로 없다. 


공기도 적어 숨쉬기도 힘들다.


예상대는바대로 이곳에서 장기간 일 하는 사람들은 호흡문제로 건강에 위협이 크다.










갱도 바로 옆면엔 누군가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이전 포토시의 화려했던 순도 높았던 은광은 이미 말라버린지 오래.


이 거칠고 힘든 환경, 막장에서 광부들은 그들의 삶을 오늘도 시작한다.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이곳에서 부지런히 작업을 해 줘야한다.


스페인 시절 그대로 아직도 쓰고 있다는데.... 정말 위태로워 보인다. 














좁디 좁은 이곳. 


식민지 시절엔 이곳에서 무려 30시간 이상을 일을 시켜 하루에 죽는 사람만 천명이 넘었다고 하니....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망치와 정만으로 끊임없이 돌을 쪼아가며 모은 여러 광물 원석들을 밖으로 부지런히 실어나른다.










깊다 많이.











이곳을 관장하는 수호신 띠오(Tio). 띠오는 스페인어로 삼촌이라는 뜻이다.




매일 와서 코카잎이나 술을 바치거나 담배 한 개피를 그 잎에 물린다.


밖은 이제 그들의 신인 카톨릭의 신이 지배하지만 이곳 갱도는.... 악마, 띠오가 지배를 한단다.







우리가 조금씩 움직일때도 부지런히 일하던 광부들.


방진 마스크 없이 거친숨을 쉬어가며 일하던 광부들의 입은 코카잎으로 불룩하고 눈동자에서는 어떤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갖고 있는 음료와 알콜, 담배, 코카잎을 나눠주니 그나마 그들의 표정에선 약간의 긴장을 푸는 모습이 보인다.



어린 나이에 시작해 짧게는 몇달부터 길게는 10년이상 일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도 1년에 몇명씩 된다고 하니.... 자기 지인들이 있다면 그 마음은 오죽할까.....






<유튜브 영상 삭제 → 유튜브 채널로 이동>

포토시 내부 현장... 비디오! 

초점이 많이 아쉽지만, 먼지가 수북한 내부 한번 보시죠...??







안에서 광부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지만 나는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빨리 나왔다.









밖에 나오니 아무래도 공기부터가 다르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그날의 갱도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어떤 슬픔이 밀려온다.











돌아와서 씻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다.








화려한 광장











여기 지금 뭐 한다요?








<유튜브 영상 삭제 → 유튜브 채널로 이동>


알고보니 곧 군인의 날인데, 포토시에선 곧 있을 행사에 대한 연습을 한다고 한다. 


각 잡으시소.ㅋㅋㅋㅋㅋㅋ









볼리비아 지폐, 단위는 볼리비아노(Boliviano).


줄여서 볼(bol)이라고도 한다.








어제의 그곳









세로리꼬(Cerro rico) 광산의 최초 은광의 높이가 5130미터였다는데 지금은 그 높이가 4880미터라고 한다. 


고도가 몇미터나 낮아졌다는데... 우리나라 전쟁시 포를 맞아 고지가 수십미터 까진것과 비교해 본다면, 

광산 내의 삶 역시 정말 전쟁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동네 밝은 미소의 소년들








포토시에 있는 동안 느꼈던 것들 중 하나가 한 지점에서 보이는 성당들이 유독 많았다. 

그때 그 시절, 이곳에서 현지인들의 갱도에서의 삶은 언제나 죽음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을까? 

그 삶의 고됨을 종교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는 어쩔수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의 시끌벅적함을 뒤로 하고 









열심히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이제 볼리비아로 마지막으로 지나칠 도시, 따리하(Tarija)로 간다.






2015년 6월 19일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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