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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세계일주/2017 아프리카

자전거 세계여행 ~2605일차 : 잔지바르, 노예 소년의 눈빛이 내게 건넨 것

by 아스팔트고구마 2019. 3. 6.

자전거 세계여행 ~2605일차 : 잔지바르, 노예 소년의 눈빛이 내게 건넨 것


2017년 5월 6일


매일같이 비가 내리다가 오늘은 날이 맑다.

빛이 제대로 들면 좋겠으나 숙소의 퀄리티는 이곳의 옛날 건물임을 감안하고 지내야하니 햇빛이 반갑기 그지 없는 상황이다.

비타민 D를 보충할겸, 활동없는 생활을 좀 벗어나 잔지바르 올드 타운을 돌아보려 한다.





그럼 오늘도 돌아온 역사공부 시간!!!!!!! 

잔지바르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설명은 두산백과님께서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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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구자 섬(Unguja Island) 서쪽 연안에 있는 근대적 무역항을 가진 항구도시이다. 인구는 약 130만 명이 거주한다. 고대 로마와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그리스의 고문서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동쪽 연안의 전통적 중계무역 때문에 아랍의 범선 다우의 기항지였다. 

잔지바르는 페르시아어 잔지(Zanzi:흑인)와 바르(bar:사주해안)의 복합어로 ‘검은 해안’을 뜻한다. 고대에 페르시아 인(人)이 건설하였으며, 1107년 이슬람 사원이 건립되었다. 페르시아 인들은 이곳을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인도를 연결하는 무역항으로 사용하였다.


1498년에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거쳐 항해해온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유럽에도 알려졌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이 점령하여 그 일부가 되었다. 

1828∼1861년 오만 제국의 수도였으며 1861년부터는 오만에서 분리한 잔지바르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아랍인 술탄의 왕궁 소재지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896년에는 영국과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38분 간 벌어진 전투였으며 신식무기를 앞세운 영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1963년 12월 영국의 보호령이 종료되고 1964년 1월 잔지바르 혁명 이후 탄자니아의 자치령이 되었다.




잔지바르는 전통적으로 향신료와 노예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번영하였는데, 당시의 유적들이 스톤타운(Stone Town)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스톤타운은 올드타운으로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은데 이곳을 지배했던 문명에 따라 아프리카, 아랍, 유럽의 문명이 함께 섞여있는 독특한 곳이다.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인도양 동아프리카의 중요한 무역항으로 당시 아랍풍의 건축물들과 이들 건물 사이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 노예시장의 유적, 술탄의 왕궁, 오만 제국의 요새, 이슬람 사원, 영국 탐험가 D.리빙스턴의 집, 성공회 성당 등이 남아 있으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잔지바르는 기온은 1년 내내 따뜻하며 11~12월, 3~5월에 많은 비가 내린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1409mm이며, 기온은 연평균 최고온도 30.3도이며 최저온도가 23.5도 이다. 교통은 다르 에스 살람(Dar es salaam)과 정기 여객선이 운항되고 국제공항이 있다. 교육시설로는 잔지바르대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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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요약된 설명대로 이곳에는 이슬람 문화가 남아있다.

간간히 기도시간이 되면 들려오는 아잔 소리가 이곳이 이슬람 국가임을 알려준다.




이곳 잔지바르가 중요 도시임은 알고 있었은데 1828~1861년이 잔지바르의 수도였다니...

이전에 들은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기억력은 이렇게나 취약하다.

뭐, 아무튼 그 역사의 흔적을 오늘 나는 경험해 봐야지.

오늘 하늘이 좋아서 기분도 조으다.




왔다. 노예 박물관!

동아프리카 노예 무역 전시관....

노예 박물관이랑, 노예 무역 전시관의 어감이 상당히 다른데...

나도 사람이라 감정이 상하는건 인지상정이겠지? -_-;




5달러 되겠습니다.




들어갑시다.

참고로 이 박물관이 있는 곳과 그리고 어제 도착한 선착장이 있는 지역부터가 모두 스톤타운 역사지구안에 포함이 되어 있다.

많은 역사 흔적은 있다가 살펴보는 걸로...




일본이 세운 작은 목비인가? 

문어 머리 심는 소리 하고 있네. 얘들 와 이카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계 평화 글을 언급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사에 대한 사죄를 할때까지 당하는 욕먹음은 계속 되어야 하리라.

아니므니다 아니므니다 해도 얄짤음따. 

독일 좀 보고 배워라, 한심한 국가 같으니라고..




뒤에 있는 건교회 건물은 앵글리칸 대성당.

건물자체에 대한 감상보다 이 이슬람 국가에 이 큰 성당이 있다는게 나로선 의문이 가게 하는 대목이다.

이곳 잔지바르는 수백년간 동아프리카 지역의 노예무역의 거점이었다.






18세기에 와서 영국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이 전개 되면서 이곳에 있는 여러 성직자들과 선교사들의 도움과 본토의 영국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도움으로 노예제는 없어졌다.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리빙스톤의 경우가 그 중 한 사람인데, 이곳에서 노예 무역 반대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후에 알았을땐 좀 의외였다. 

그는 그냥 단지 돌아보고 약간의 정복욕이 있었나보다. 사람이 아닌 것에 대한 어떤것일지도 모르겠다만...

후에 영국 런던의 박물관에 갔을때 이곳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은 당시의 영국 및 유럽 열강들이 한 일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뭐 다 아는 바대로다.

참고로 그 한 짓엔 위에 나무 작대기 하나 꼽아놓고 아닌척 하는 옆나라 일본도 포함이 된다. 




이슬람인 탄자니아에 대성당까지 남아있고 노예제가 폐지 된 이후 현지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가 아닌 영국에서 건너온 종교를 믿은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의 신분 변화, 그리고 그들의 삶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아서인 것 같다. 




불편하다.

목에 묶인 쇠사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노예 수용실.

높이가 굉장히 낮았다. 

영국인들은 흑인을 사람으로 봤을까?

당연시 하는건 아니지만 옛날엔 지금같은 인권같은 개념이 없었다고 그렇게 해야되는건 무슨 논리?

브라질 상파울루 아프리카 박물관 갔을때 아프리카 사람들을 브라질로 실어올때의 배가 생각이 난다.

무슨 성냥곽에 공간없이 성냥채우는 모양으로 사람을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앞사람이 똥이나 오줌을 싸면 그냥 그걸 그대로 얼굴에 마주하게 되는 상황의 짐칸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노예제의 시작부터 변천사를 본다.

이곳 잔지바르는 앞서 설명한대로 무역항 중심역할을 했었고 그 무역의 주요 품목중엔 많은 향신료가 있었다.

옛날의 농산물이야 지금처럼 기계가 없었으니 필요한건 당연히 노동력.

그래서 필연적인 노동력, 노예가 하나의 '아이템'처럼 거래가 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체험보다는 사진과 설명이 많은 이곳이다. 

그 아쉬움이 좀 있지만 사진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중 하나는 바로 사람들의 표정이 아닐까.




잊을수가 없다. 그냥 울컥하게 만든 저 소년의 눈빛.


"그냥 가시나요?"

"저 좀 도와주시면 안되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저를 사 주시면 안될까요....?"


눈빛이 내 가슴을 화살촉으로 팍팍 찌르는듯한 느낌을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상상해 본다. 

만약 저 상황에서 노예주인의 입장에서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자문해 본다. 

이해 관계가 걸린다면, 나 또한 입닥치고 있겠지? 

별다를것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도 연속이 되는 것이니까.

침묵하는 것은 동조 하는 일인데, 또 반대 입장이라면 또 어떻게 될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난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걸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의 이권을 포기할까? 

지금의 세상에 이런 모양의 노예제는 없다. 그러나 좀 더 세련되고 멋진 용어와 경제논리로 지금은 우리의 삶을 프레임화 시키고 있음은 부정할래야 부정할수 없다. 

더 나이들기전에 조금이라도 젊을때 이런 마음을 가져놔야지. 나이 들면 나도 이상하게 추해질것 같다.




저 소년의 눈빛.

내가 일제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너무 감사하고, 

내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너무 감사하고, 

태어난 나라가 전쟁이 쉬고 있지만 다시 재발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이었다.




자유에 대한 이야기.

그나마 좁은 지식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윌리엄 윌버포스를 이곳에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단순히 한 사람이 한게 아니라 그의 많은 친구들과 함께 이룬 노예제 폐지. 

난 전혀~ 영국의 신사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윌리엄 윌버포스 같은 사람이 영국의 국격을 지키는 주춧돌이자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그 광기의 나치 독일에서도 히틀러를 죽이려는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이 아주 남아있는 독일의 양심 한 줄기임에는 틀림없으니.




노예제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모양을 바꾼 현대의 모양이 다른 노예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종차별. 

이민자가 많은 호주, 캐나다에서도 내가 직접 겪었다.

유럽은 말할것도 없고.

인종차별.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칭챙총하는.... 햐... 이 미친.. 정말 머리속에 뭐가 들었을지 의심이 되는 띨띨이 흑둥이들에게, 싸이형의 노래 챔피언을 들려주고 싶다


소리지르는 니가~ 챔피언~

인생즐기는 니가~ 챔피언~ 

*니가=nigga(=nergo 흑인 비하언어)  ㅡㅡ;




마음이 적당히 불편했었다. 

주변이나 좀 둘러봐야지. 




식민지 풍의 건물들과 이슬람 양식의 디자인이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박물관에서 조금 걸어 나와 동네 주변을 나오다 보니 바닷가에 와버렸네. 

지금은 우기 시즌의 잔지바르다.

간만에 내리쬐는 햇빛이 좋은데 공기에서 묻어나는 습함이 참 찐득찐득하고 성가시다. 





지금 돌아보고 있는 이곳은 바로 앞서 언급한 스톤타운(Stone town) 구 시가지.

그 중심이 되는 배 선착장까지 왔다.

많이 현대적으로 변했지만 곳곳에 옛날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들이 많다.

현대화 될수록 옛것은 사라지지만 그 발전 속도는 우리의 것에 비하면 더딘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걸 알고 죽든 모르고 죽든, 아니면 보고 죽은 안 보고 죽든 삶에 큰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 없는 여행지의 실제 경험+ 직접역사를 가진 간접경험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에 대한 솔직한 반응이 내 모습인거고 나를 모르는 나의 발견도 되는 것이니까. 

흠, 나름의 개똥철학이라도 난 이게 참 맘에 든다. ㅎㅎㅎㅎㅎ



터미널에서 북쪽으로 길을 따라 가면 어시장이 있어 그곳으로 가 본다.


이런데 말고 




응, 이런 곳! 




시끌시끌~ 사람 사는 분위기 나는구만!!! 




나를 닮은 친구, 오징어 좀 샀다.

손질까지 해 달라하면 다 해줌. ㅎㅎㅎㅎㅎ




숙소로 돌아와 오징어 볶아 먹어야제~! 

이러려고 고추장 들고 댕기는거다!!!! 

와, 얼마만인지......

그리스에서 오징어 먹고 싶어서 과수원에서 캠핑하면서 냉동오징어 삶아 먹는거 생각하면 지금은 말할수 없을 정도로 으쓱으쓱 해지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으!!!  



2017년 5월 6일 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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