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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세계일주/2017 아프리카

자전거 세계여행 ~2728일차 : 위대한 6.25 참전용사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by 아스팔트고구마 2019. 5. 24.

자전거 세계여행 ~2728일차 : 위대한 6.25 참전용사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2017년 8월 10일 오후 


꼬마 조직 소매치기단과의 만남. 

잠잠하던 내 마음의 호수에서 보트타고 돌 던지고 쓰레기 버리고 난리 부르스. 

잠잠해지기 위해 또 시간이 필요할까.

나도 사람이다. 새퀴들아.




행선지는 바로 저 위! 

아디스 아바바 박물관!





뭐라도 좀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왔다.

아디스 아바바 시내에는 미술관도 있고 다른 박물관도 있다.

지나온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 만큼이나 이 나라 자체에 대한 큰 정보는 갖지 않고 왔다. 

적어도 내가 이곳에서 관광을 길게 할 수 있을꺼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편으론 핸드폰으로 시궁창을 한번 구른뒤엔 동선을 멀리 짜기도 싫어졌다. 

걷기 좋아하는 나지만 길에서 아까와 같은 일을 가급적 덜 만들고 싶어서.




아디스 아바바 박물관에서 바라본 메스켈 광장.

뷰가 탁 트여 보기 좋네. 

높이가 있는 만큼 아주 쬐끔 걸어 올라오면 된다. 




박물관 주변에는 가이드 해주겠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신경 안 써도 된다. 안에 설명해주는 친구가 따라 온다. 

딱히 안 불러도 상관없다.  

나 역시 부르지 않았지만 사람도 없는데 혼자 이러잴 서 있는게 괜히 마음이 그래서 마무리가 될때 쯤에 그 친구를 따로 불러 설명을 듣고 팁을 줬다. 

(팁은 불포함이니 조금이나마 주는게 좋을듯 하네요.)




어이, 외국인 왔나? ㅎㅎㅎㅎ

환영한데이~~~~ 

외국인 5배 가격 내라.

학생대비 25배, 현지인 대비 5배... ㅎㅎㅎ

(이건 내가 생각하는 창조경제)

사실 이거 넘 심한데. ㅡㅡ^ 




입장!




조악한 박제들.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박물관이 이 정도야?

에라이...-_-; 


오~ ㅎㅎㅎ 다행이었다. 

입구에서 본 박제가 이 박물관의 전체 수준이 아니라서....

동물들을 좀 마지막에 배치를 했으면 나았으려나?




동물 가죽에 그린 그림.

아디스 아바바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이러한 형태의 작품들을 꽤나 보았다.

멋짐. ^^ 




시간이 오래 되서 전부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름은 봤는데 한번쯤 들어본 이름. 근데 같은 이름으로 2세, 3세 이렇게 해서 헷갈림만 더해진다.

일반 사람들한테 물으면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16세도 헷갈려 할 사람이 많을텐데...

하물며 우리가 배울일이 거의 없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관계도 거의 없는 나라의 왕 이름들을 어떻게 알리? 




왕은 뉘시옵니까?

사흘레 셀라시에, 19세기 초중반의 에티오피아의 통치자다. 

뭐 언제나 역사에서의 설명은 양면적이다. 

에티오피아의 굶주린 국민들에게 창고르 열어 먹을 것을 풀어줬다, 영토를 넓힌 등등의 업적이 있단다. 

자세한 건 검색~! ㅎㅎㅎ  




유물 전시장 구경.

박물관내 유물들이 시대나 컨셉이 어떤건지 정확히 이해가 안 된다. 어떤 분류로 해 놨는지도 좀 불 분명하고.

에티오피아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온 건 아니라 이해가 짧다. 




복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최근의 것들이 많은 듯 하다.

무엇보다 20세기 이전의 자료를 흑백사진으로 남겨 놓은 것이 꽤나 흥미롭다.

에티오피아는 300년전의 인간의 조상이자 최초의 인류 화석이라는 '루시'가 있다는 곳이다.

수도에 있고, 이름 또한 아디스 아바바 박물관이라 뭔가 센거 좀 있는 것들을 기대했는데, 욕심이었나보다. 




19세기 사진들.

아디스 아바바의 뜻은 '새로운 꽃New flower'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내 견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커피를 통해서 에티오피아의 여러 도시 이름을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지내면서 생각케 된 것은 이 나라 언어인 암하릭 에서 영어로 바꾸다 보니 발음이 정확치 않은게 적지 않다.

아디스 아바바는 이곳에서 아디스 아베바 라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주요 커피 산지인 "Yirgacheffe" 또한 예가체프는 전혀 없는 발음이다. 실제로 이르가처페에 가깝게 발음한다. 그나마 이가체프는 비슷하네. 

도대체 저 발음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거지?? ㅡㅡ^

뭐 또 좀 있어 보일려고 th 발음이나 s를 sh로 발음하는 사람이 있긴 하더라. 

뭔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것을 듣다보면 때때로 그 대상자의 전문성에 대해 의문이 생길때도 있다. ;;;;




근현대 모습들




이 그림의 의미를 나는 잘 모르겠다.



진즉에 에티오피아에 대한 역사를 한번쯤은 언급을 했어야 하는데, 지금에서 짧게 해 보려고 한다.

내겐 에티오피아 정교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심이 상당히 강렬함 그 이상의 깡다구를 보았고, 현대사에서 우리나라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더욱 더 에티오피아를 다시 보게 만든다. 

에티오피아 나라의 유래는 잘 알려진대로 성경에 나오는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이걸 그대로 믿기에 이들은 헌법에도 그것에 대해 명시를 해 놓았다.





에티오피아 왕조의 탄생은 성경에 나온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기원전 900년 유다 왕국 왕 솔로몬을 방문한 시바 여왕이 동침 후 낳은 아들이 메넬릭 1세로 이 나라의 시초로 잡고 이어진다. 그 메넬릭이 아버지인 솔로몬을 만나러 가서 법궤를 들고 왔다고 했는데 그 법궤는 당연히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ㅎㅎㅎ 


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그 뿌리를 유대인과 유사점(종교적으로)이 많다는 것, 이스라엘의 많은 유대인들이 에티오피아 출신이 많다고 한다. 

현재에도 주변국들은 이슬람 국가이나 에티오피아는 주 종교가 에티오피아 정교가 인구의 절반 정도가 된다. 

아무튼 그 솔로몬 계통의 왕은 계속 이어져오다 1974년 자국내 군사 쿠테타로 끝이 났다. 

그 마지막 계통의 인물은 우리나라가 6.25전쟁을 치르고 있을때 아프리카의 유일한 파병국이었던 에티오피아의 왕,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였다.


하일레 셀라시에 왕과 더불어서 한국전 파병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고 상당히 감동적이고 그 역사는 현재도 진행중이다. 




(상징적인 그림이 아닐까 싶다.)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아 1차는 무사히 넘겼으나 2차는 패해서 이탈리아의 식민지배 아래 들어간다.

당시 이탈리아는 1차 전쟁이 지고나서 앙갚음을 하고자 했는데 그때의 식민지였던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현재의 소말리아 지역)을 하나로 잇기 위해 불분명한 영토 경계를 갖고 시비를 걸어왔다. 

이탈리아는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고, 에티오피아는 반발하고... 그래서 작은 소요사태가 확장되면서 큰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자 전쟁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당시 침략 전쟁을 이끈 사람이 이탈리아의 상돌아이, 파시즘을 만들어 제낀 대단한 선동가 베니또 무솔리니다. (후에 에티오피아에서도 나가리 된 뒤 다시 과거의 영광을 찾고자 무솔리니가 손을 잡을 대상은.... 바로 그 사람! 독일의 히틀러였다.)

전쟁에서 진 하일레 셀라시에 왕은 당시 국제 사회에 많은 도움을 요청했으나 외면당했고(국제 관계의 복잡한 관계;;;) 1941년 영국에 의해 이탈리아가 쫓겨나자 셀라시에 왕은 복위 되었다. 




그 외면 당함을 마음 속에 상당히도 깊이 새겨놓았나 보다. 

셀라시에 왕은 UN에서 

"우리가 힘들 때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와 같은 나라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약한 나라를 도와주자!" 라는 '집단안보'를 주장하고 나섰는데...

공교롭게도 첫번째로 발발한 전쟁이 한국전쟁 6.25였다. 

자기의 친위군에서 다시 정예병을 뽑아 1개 대대를 편성하고 그 이름을 '강뉴부대(Kagnew)-초전박살이라는 뜻' 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강뉴 부대는 16개국 참전군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다. 그것도 오로지 보병으로만. 전차가 없어서 옆 미군 부대와 조율을 해야했다고 전해진다.





부대 창설 당시 셀라시에 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에티오피아가 항상 추구해왔던 '세계평화를 위한 집단안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5차에 걸쳐 6,037명의 참전하였고,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기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이란다.

그리하여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시간 되시는 분은 유튜브를... ^^ 



감동주의 : https://www.youtube.com/watch?v=xLhypwCLk5o

 

전쟁 후 참전 군인들은 1970년대 기근으로 인해 나라 상태가 말이 아닌 상태의 본국으로 돌아왔고, 농업과 목축업을 영위하는 그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공산계열의 군부 '맹기스투'가 쿠테타를 일으켰다. 

에티오피아 내정에 여러 문제를 누적적으로 안고 있던 셀라시에 왕은 축출되고 왕정은 끝이나고, 현재의 공화정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참전 군인들은 공산국가를 상대로 싸웠으니 당연히 감옥에 가거나 재산 몰수 등을 당하며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참전 군인임을 숨기거나 개명까지 하는 경우가 생겨서 참전 용사는 다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정말로 6.25 전쟁 당시 국제적인 관계에 아마 가장 관계가 없었던 나라라면 '에티오피아'라고 생각한다.

멀기도 멀었고,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사상적인 대립 관계안에도 있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정말로 대의 명분, 그 순수한 마음으로 참전을 한 것이다. 

도와준 셀라시에 왕의 끝이 그리 좋지 않아 안타깝다. 전립선 수술의 합병증으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암살되었다는 설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왔었다. 


https://youtu.be/_R4YWYQnhao


마음에 굉장한 감동, 그리고 에티오피아 참전 군인용사들께 엄청난 고마움과 감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강뉴부대 이야기야 알고 있었지만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와 겪은 이야기는 잘 몰랐으니까.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피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있습니다.




이들의 전쟁 때 쓰던 복식이라고 들었던것 같다.

그리고 신호 역할을 하던 북!




아프리카 식민지 시기에 유일하게 독립을 하고 있던 나라 에티오피아.

정말 끝내주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들의 종교와도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해 봤다. 




<랄리벨라 교회>


에티오피아에는 해발 2~3000미터가 되는 지대에 있는 돌바위를 파고 땅아래로 들어가 만들어놓은 교회가 있다. 

그 악다구, 깡다구가 독립국으로 남아있게 한거라 생각한다.




어지간한 신심(믿음)도 깡다구 없인 안된다고 생각하니깐. 

그리고 주변나라와 달리 에티오피아에서 이런게 보인다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의 기질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다. 




과거는 이제 과거일뿐. 

왕정은 사라지고 저 돈에 새겨진 하일레 셀라시에 왕을 끝으로 에티오피아에는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박물관 오기전엔 참 짜증스러웠던 감정. 

돌아보다 보니 가슴한켠에 뭔가가 남는다. 




공산시대의 유물.

91년 맹기스투 정권 몰락 이후 Byebye.




태극기 휘날리며의 '훈장' 장면이 생각나는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사 도구들.

인제라를 주식으로 하는 에티오피아 군 답게 인제라를 어떻게 만들고 보관했을지 상상이 쉽게 된다. 




박물관에서 바라본 메스켈 광장. 

박물관 내부 돌아보고 나니 비가 좀 잦아들었네. 




가이드 가브리엘.

박물관 밖에서 허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공식 가이드인척 하며 오는 외국인들에게 사기를 쳐서 그런 일로 에티오피아 이미지를 깎아 먹는게 싫다고 했다. 

그와의 대화, 그리고 적당한 재미가 있었던 박물관에서의 경험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한 현지인이 말을 건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날 속여서, 자기의 커피 한잔값 내게 한다. ㅎㅎㅎ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려고 계속 봤다. 

커피 관심있어 한다니 싸게 파는 곳 안다며 자꾸....

비유하자면 뭐랄까 초보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김치 만드는 법 알려주는 느낌. 



몇몇 만나는 사람들 중에 에티오피아에서 과거에 우리가 한국 도와준걸 아냐고 물어보면 너희도 우릴 도와야 한다고 강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자들도 이런것을 겪었는지 그런 글들이 종종 보인다. 


그 반응이 꽤나 재미지다.


"현지인 : 우리가 한국 도와 준거 알지?"

"나 : 응, 알아. 근데 우리가 지금 너희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한국에 데려와 교육도 시키고... 많은 도움 주고 있는거 알아?"

그럼 보통 조용. ㅋㅋㅋㅋ


* 참고로 우리나라의 지차체와 NGO 단체들 및 기업에서 6.25 참전 용사와 그 유가족에 꾸준히 도움을 주고 있고 여러가지 교육과 동시에 한국에서의 기회 또한 주고 있다. 그 참전 용사 가족중엔 '죽은 왕이 현재의 우리를 살리고 있다.'는 말도 했단다.



집으로 가는 길, 들른 동네 길 카페....


마음이 분주한 하루였다. 

에티오피아는 이런 양극단의 감정을 내게 가져다 주는 나라다.

엄청난 감동으로 얼어붙은 심장을 녹였다가, 뒤통수를 금방 때리는 사람을 만난다. 


하하하...

이게 여행이다.... 



2017년 8월 10일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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